드디어 3주간의 미국 서부 나홀로 여행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이 밝았다.

새벽 6시경, 따뜻하게 하룻밤 머물렀던 사무실을 나서 우버(Uber)를 호출하고 밖으로 나왔더니 밤사이 눈이 소복하게 내려 있었다. 미국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에 마주한 눈 풍경이라니, 마치 영화의 마지막 장면 같았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시애틀의 새벽 잔디밭과 야생 토끼

우버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깜짝 놀랐다. 눈 덮인 잔디밭 위로 귀여운 야생 토끼들이 총총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 도심에서는 길고양이만 보다가 시애틀 한복판에서 야생 토끼를 마주치니 무척 신기했다.

우버를 타고 약 5분 정도 이동해 근처 지하철(Link 경전철) 역에 내렸다.

시애틀 공항으로 향하는 경전철 창밖으로 보이는 정겨운 주택가 풍경

사무실에서 시애틀 터코마 국제공항(SEA)까지 바로 우버를 타면 요금이 꽤 비싸게 나왔기 때문에, 가까운 경전철역까지만 우버로 이동한 뒤 거기서부터는 공항행 열차를 타고 시애틀의 아침 풍경을 감상하며 천천히 이동했다.


시애틀 공항 체크인 & 아찔했던 PCR 서류 해프닝

공항에 도착해 델타항공(Delta Air Lines) 카운터에서 체크인과 수하물 위탁을 진행했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지도 못한 아찔한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코로나19 방역 지침상 한국 입국을 위해서는 PCR 음성 확인서가 필수였는데, 내가 검사받았던 병원에서 발급해 준 결과지에 ‘검사 방법(Test Method)’과 ‘검사 시간’ 항목이 명확히 기재되어 있지 않아 카운터 직원이 이 서류로는 발권이 어렵다고 한 것이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다행히 전날 호텔 비즈니스 센터에서 결과지를 출력할 때, 병원 예약 내역과 상세 페이지 등 관련 서류들을 혹시 몰라 전부 함께 인쇄해 왔었다. 그 서류 뭉치를 보여드리며 검사 일시와 방식이 모두 적혀 있다고 차근차근 설명해 드렸더니, 직원분이 꼼꼼히 대조해 본 뒤 고개를 끄덕이며 무사히 탑승권을 발권해 주었다. 만약 본 결과지 한 장만 달랑 뽑아왔다면 비행기를 못 탈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참고로 시애틀에서 무료 코로나 검사를 받으실 분들은 UW(워싱턴 대학교) 검사소나 Curative를 이용하시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이용했던 GS Labs도 무료이긴 했지만 서류 양식 때문에 공항에서 꽤 진땀을 뺐다.

델타항공 모바일 앱으로 발급받은 스카이 프라이어리티 탑승권 화면

시애틀 공항 델타항공 카운터 앞에서 촬영한 대한민국 여권과 종이 보딩패스

우여곡절 끝에 손에 쥔 소중한 보딩패스!

한국에서 미국으로 올 때는 일반 이코노미(메인 캐빈) 좌석을 타고 왔지만, 돌아가는 길에는 델타 프리미엄 셀렉트(Delta Premium Select, 프리미엄 이코노미) 좌석을 끊었다. 사실 한국에서 출발하기 전 예약 단계에서부터 좌석 업그레이드를 해두었었는데, 미국에 갈 때는 설레는 마음 하나로 이코노미 10시간 비행도 거뜬히 버틸 수 있지만 돌아갈 때는 3주간의 여행 피로가 누적되어 도저히 좁은 좌석을 견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ㅋㅋㅋ

프리미엄 셀렉트 승객에게는 스카이 프라이어리티(Sky Priority) 혜택이 제공되어, 위탁 수하물도 무료로 2개까지 부칠 수 있었고 전용 체크인 카운터와 우선 탑승 혜택까지 누릴 수 있었다.

시애틀 터코마 국제공항의 탁 트인 통유리창과 게이트 대기 구역

시애틀 공항 출발 항공편 안내 전광판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 면세 구역으로 들어왔다. 보안 검색을 기다리는 동안 내 앞에 서 계시던 중년 부부께서 말을 걸어주셨는데, 어디를 여행하고 돌아가는 길인지 물어보시며 “그 젊은 나이에 혼자 미국 여행을 오다니 정말 대단하고 멋지다”고 따뜻하게 격려해 주셔서 마음이 참 뿌듯했다.

S15 게이트 주기장에 대기 중인 델타항공 A330-900neo 항공기

S15 게이트 통유리창 너머로 오늘 나를 한국까지 데려다줄 델타항공 DL197편(A330-900neo) 여객기가 늠름하게 서 있었다. 비행기를 바라보니 이제 정말 미국을 떠난다는 실감이 밀려왔다.

공항 식당에서 주문한 2만 원짜리 치킨 야끼소바 볶음면

비행기 탑승 전 배가 너무 고파서 게이트 근처 식당에서 치킨 야끼소바를 하나 사 먹었다. 무려 한화 약 2만 원이나 주고 산 음식인데… 이번 3주간의 미국 여행 중 먹었던 모든 음식을 통틀어 가장 맛없고 돈 아까운 한 끼였다 ㅋㅋㅋㅋ 공항 물가라 어쩔 수 없었지만 조금 슬펐다.

서울 인천행 델타항공 DL197편 탑승을 알리는 S15 게이트 안내 스크린

탑승교를 따라 비행기 출입구로 들어가는 설레는 순간

오전 11시경, 드디어 보딩이 시작되었다!

스카이 프라이어리티(Sky Priority) 덕분에 긴 줄을 기다릴 필요 없이 비즈니스석(델타 원) 승객 바로 다음 순서로 쾌적하게 기내에 탑승했다.


델타항공 프리미엄 셀렉트 (Delta Premium Select) 좌석 & 서비스

기내에 들어서자마자 깔끔하고 세련된 델타 프리미엄 셀렉트(Delta Premium Select) 전용 캐빈이 반겨주었다.

2-3-2 배열로 구성된 델타 프리미엄 셀렉트 좌석과 푹신한 베개

A330-900neo 기종의 프리미엄 셀렉트 좌석은 2-3-2 배열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 이코노미석보다 좌석 폭과 앞뒤 간격(레그룸)이 훨씬 넓고, 각도 조절이 가능한 헤드레스트와 발 받침대(레그레스트·풋레스트)가 갖춰져 있어 장거리 비행에서 체감되는 편안함이 차원이 달랐다. 자리마다 푹신한 베개와 담요도 기본으로 세팅되어 있었다.

트레이 테이블 위에 펼쳐본 투미(TUMI) 어메니티 파우치와 구성품

좌석 위에는 프리미엄 셀렉트 승객을 위한 전용 헤드폰과 함께 명품 가방 브랜드인 투미(TUMI)와 협업한 어메니티 키트가 놓여 있었다!

네이비 컬러의 고급스러운 투미 파우치 안에는 수면 안대, 귀마개(이어플러그), 칫솔·치약 세트, 그리고 립밤과 핸드로션이 알차게 들어 있었다. 파우치 퀄리티가 워낙 좋아서 여행이 끝난 뒤에도 일상 수납용으로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팔걸이 안쪽에 자리한 리클라이닝 조절 버튼과 엔터테인먼트 리모컨

큼직한 13.3인치 좌석 모니터와 넉넉한 수납 포켓, 하단 발 받침대

팔걸이 옆면에는 등받이 각도와 다리 받침대를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버튼과 리모컨이 자리 잡고 있으며, 좌석 앞쪽에는 110V 전원 콘센트와 USB 충전 포트도 넉넉히 마련되어 있다.

개인 모니터 화면도 이코노미석보다 훨씬 큼직하고 해상도가 선명해서 비행 내내 영화를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기내 창밖으로 바라본 거대한 롤스로이스 엔진과 시애틀 공항 주기장

내가 앉은 23J 좌석은 날개 바로 앞쪽 창가 자리라 거대한 엔진과 바깥 풍경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이륙 전 활주로에서 디아이싱(방빙 작업)을 마치고 이동하는 모습

새벽에 내린 눈과 영하의 날씨 때문에 이륙 전 항공기 날개와 동체의 얼음을 제거하는 디아이싱(De-icing, 방빙 작업)이 진행되었다. 창밖으로 분사되는 방빙액을 구경하는 것도 겨울 비행만의 색다른 볼거리였다.


기내식과 잭 다니엘 한 잔, 그리고 11시간의 비행

이륙 후 고도를 안정적으로 잡자마자 첫 번째 기내식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코카콜라와 함께 제공된 첫 번째 기내식 트레이

시원한 코카콜라 한 캔과 함께 따뜻한 핫밀, 샐러드, 크래커, 그리고 달콤한 브라우니 디저트가 한 트레이에 정갈하게 담겨 나왔다. 조금 전 공항에서 먹었던 야끼소바의 아쉬움을 달래줄 만큼 기내식은 꽤 든든하고 맛있었다.

기내 간식으로 요청한 잭 다니엘 위스키 미니어처와 탄산수, 오레오와 로투스 쿠키

식사를 마치고 영화를 보며 쉬고 있으니 승무원분께서 스낵 바구니를 들고 다니며 간식과 음료를 권하셨다.

오레오와 로투스 비스코프 과자를 집어 들고, 음료로는 잭 다니엘(Jack Daniel’s) 위스키 미니어처와 탄산수를 부탁드렸다! 얼음 컵에 잭 다니엘과 탄산수를 적당히 섞어 기내표 위스키 하이볼을 만들어 마셨는데, 은은하게 알코올이 돌면서 피로가 사르르 풀려 그 뒤로 푹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ㅎㅎ

한국 도착 전 두 번째 식사로 제공된 따뜻한 잉글리시 머핀 샌드위치와 스타벅스 커피

한참을 자고 일어나니 어느덧 비행기가 한반도 상공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착륙 전 가벼운 두 번째 식사가 제공되었다.

따끈따끈한 에그 & 치즈 잉글리시 머핀 샌드위치와 향긋한 스타벅스 커피 한 잔으로 속을 달래고 나니, 기내 방송으로 인천국제공항 착륙 안내가 흘러나왔다.

인천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한 뒤 하기 준비로 분주한 기내 풍경

드디어 인천국제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약 11시간이 넘는 긴 비행이었지만 프리미엄 셀렉트 좌석 덕분에 허리나 다리 통증 하나 없이 정말 쾌적하게 날아올 수 있었다.


코시국 인천공항 입국부터 부산 집까지 (방역버스 & KTX)

비행기에서 내려 그리웠던 한국 땅을 밟았다! 하지만 지방 거주자였던 나에게는 인천공항에서부터 부산 집까지 돌아가는 또 하나의 기나긴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천국제공항 입국장 통유리창 너머로 반갑게 맞이해주는 대한항공 여객기

창밖으로 푸른빛의 대한항공 항공기를 보자마자 “아, 진짜 한국에 돌아왔구나!” 하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스카이 프라이어리티 태그가 달린 수하물과 입국 검역 후 교부받은 격리 통지서

당시(2022년 2월 말)는 해외 입국자 전원 자가격리가 의무였던 시기라 검역 절차도 무척 삼엄하고 꼼꼼했다. PCR 음성 확인서 확인과 자가격리 앱 설치, 서류 작성까지 마치고 나면 여권 표지에 확인 스티커를 붙여주고 격리 통지서를 교부받는다.

수하물 수취대에 가보니 스카이 프라이어리티 태그 덕분에 내 캐리어와 더플백이 가장 먼저 나와서 얌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인천공항 해외입국자 전용 방역버스 대기 장소 안내 표지판

광명역 KTX 및 공항버스 이동 절차를 안내하는 전광판

국군 장병들이 지원하는 해외입국자 환영 및 이동 안내 카운터

당시 해외 입국자는 일반 대중교통(공항철도나 일반 리무진 버스)을 이용할 수 없었고, 지방으로 내려가려면 인천공항에서 해외입국자 전용 방역버스를 타고 광명역으로 이동한 뒤, 광명역에서 해외입국자 전용 KTX 칸으로 환승해 내려가야 했다.

다행히 공항 곳곳에 국군 장병분들과 안내 직원분들이 배치되어 있어 무거운 짐을 끌고도 헤매지 않고 수월하게 버스 탑승장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광명역에 도착해 KTX 해외입국자 전용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길

KTX 해외입국자 전용 객차 안에 차곡차곡 쌓인 여행 가방들

방역버스를 타고 광명역에 도착한 뒤, 일반 승객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도록 분리된 전용 에스컬레이터를 따라 KTX 승강장으로 내려갔다. 전용 객차 한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인 캐리어들을 보니 다들 머나먼 타국에서 긴 비행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동질감이 느껴졌다.

밤늦은 시각 부산역에 도착해 해외입국자 전용 방역택시를 기다리는 모습

KTX를 타고 달려 마침내 밤늦은 시각 부산역에 도착했다!

부산역 앞에서도 일반 택시가 아닌 해외입국자 전용 방역택시를 배정받아 탑승했고, 시애틀에서 출발한 지 꼬박 하루가 훌쩍 넘어 마침내 자가격리 숙소에 도착했다.

새벽 1시 반, 자가격리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배달시켜 먹은 마라탕과 볶음밥

숙소에 짐을 풀자마자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반이었다.

미국 여행 내내 가장 간절하게 생각났던 소울푸드, 마라탕과 계란볶음밥을 배달 앱으로 주문했다! 얼큰하고 칼칼한 마라 국물을 한 숟가락 떠먹는 순간, 3주간의 여독과 긴 비행의 피로가 단번에 씻겨 내려가는 듯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에필로그: 스물한 살, 첫 미국 서부 나홀로 여행을 마치며

샌프란시스코 금문교의 푸른 바다와 붉은 현수교 풍경

이렇게 총 27편에 걸친 미국 서부 나홀로 여행기가 모두 막을 내렸다.

처음 미국행 비행기 표를 끊었을 때만 해도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영어도 완벽하지 않고, 운전면허도 없이 뚜벅이로 광활한 미국 서부의 대도시와 국립공원을 혼자 여행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다.

실제로 여행 중 예상치 못한 일들도 참 많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우연히 좋은 인연들을 만나 함께 웃고 떠들기도 했고,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눈부신 설경 앞에 말문이 막히기도 했으며, 로스앤젤레스에서는 인종차별을 겪거나 경비가 부족해 주식을 팔아가며 예산을 메우기도 했다. 또 시애틀에서는 따뜻한 은인분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마지막 밤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완벽하게 계획대로만 흘러가지 않았기에 오히려 모든 순간이 더 생생하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다. 낯선 세상 앞에서 스스로 부딪히고 해결하며 한 뼘 더 단단해질 수 있었던 3주간의 시간은 앞으로 내 인생에서 오랫동안 큰 원동력이 되어줄 것 같다.

그동안 부족한 글솜씨로 적어 내려간 긴 미국 서부 여행 시리즈를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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